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유교문헌... 조선시대 학자 황귀성의 시·기(記)·상량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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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유교문헌... 조선시대 학자 황귀성의 시·기(記)·상량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 자유게시판

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유교문헌... 조선시대 학자 황귀성의 시·기(記)·상량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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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0회 작성일 22-05-1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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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유교문헌

               조선시대 학자 황귀성의 시·기(記)·상량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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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조선시대 학자 황귀성의 시·기(記)·상량문·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내용2권 2책. 석인본. 후손 극동(極東)의 교열 및 편집을 거쳐 이교선(李敎善)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익조(鄭翊朝)의 서문과 권말에 극동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권1에 시 7수, 서(書) 1편, 기(記) 2편, 상량문 1편, 잡저 1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가장(家狀)·묘갈명·묘갈음기(墓碣陰記)·만휴당전(晩休堂傳)·기사후서(記事後敍)·서행장후(書行狀後)·축문, 익양서당(益陽書堂)의 이건기(移建記)와 중수기(重修記), 낙성운(落成韻) 등이 수록되어 있다.시는 우국충정을 읊은 것이 많은데, 그 중 「도평양감분(到平壤感憤)」은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柳成龍)의 막하에 있을 때 평양에서 달 밝은 깊은 밤에 대동강 언덕을 거닐면서 지은 시로, 충분 강개한 뜻이 촉석루 삼장사(三壯士)의 시와 같다. 「억이순신(憶李舜臣)」은 이순신을 생각하면서 지은 것으로 우국충정이 넘쳐흐른다.「난중기사(亂中記事)」는 1592년(선조 25)에 스승인 유성룡을 방문하기 위하여 서울에 가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된 유성룡의 막하에 들어가 7년간 있을 때 쓴 것이다. 그가 유성룡을 따라 선조를 호종(扈從)한 일과 유성룡이 안주(安州)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진무하고 군량을 준비하다가 명나라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 일, 그 뒤 유성룡이 충청·경상·전라 3도체찰사가 되어 파주(坡州)까지 진격한 일, 이순신이 순국하자 유성룡의 명을 받고 장례를 치른 일, 진주성에서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가 강에 투신하여 죽고 황진(黃進)이 전사한 일 등 임진왜란 당시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집필자집필      (1995년)조기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


황극동(黃極東)

1847년(헌종 13) 5월 24일∼1921년 3월 26일. 조선 말기 유생. 자는 여직(汝直)이고, 호는 만운(晩雲)이다.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임하면(臨河面) 고곡리(古谷里)에서 태어났다.

임진원종공신(壬辰原從功臣) 정략장군(定略將軍) 만휴당(晩休堂) 황귀성(黃貴成)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황복하(黃復河)이며, 조부는 황종운(黃鍾韻)이고, 부친은 황경화(黃景華)이다. 외조부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양수(李陽秀)이고, 처부는 안동김씨(安東金氏) 김백순(金百淳)이다.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는 정성을 다하여, 20세 약관의 나이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출입할 때마다 반드시 사당에 고하는 일을 하루도 빼먹는 일이 없었으며, 기일(忌日)에는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세찬 바람이 불거나 번개가 치면 반드시 의관(衣冠)을 바르게 갖추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부모를 모실 때는 뜻을 받들고, 제사를 받들 때는 반드시 풍성하게 하였으며, 가법(家法)은 엄격하게 지켰으며, 친척들에게는 반드시 온화하고 화목하게 대했다. 마을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어진 사람을 받들고, 나라를 위해서는 반드시 충성을 다하며 살다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황찬세(黃燦世), 황찬시(黃燦時), 황찬우(黃燦宇)이고, 딸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심상춘(沈相春)에게 출가시켰다.

묘소는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백운동(白雲洞)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문집 『만운유고(晩雲遺稿)』는 1책 석판본으로 권오봉(權五鳳)의 서문(序文)과 황병주(黃昞朱)의 발문(跋文)을 붙여 1959년에 편찬 간행되었다.

그는 또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 당시 공훈을 세웠던 그의 선조(先祖) 만휴당(晩休堂) 황귀성(黃貴成)의 시문집인 『만휴당문집(晩休堂文集)』의 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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