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애향인 인터뷰 [101]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 황윤진 회장의 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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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4-11-14 04:42본문
기자명 황재천 기자 입력 2024.07.25 16:12 수정 2024.08.17
선조의 삶을 닮은 후손, 세상을 밝힌 조상의 발자취를 찾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약자 위한 노동운동이 정치로, 경기도 재선 도의원 역임
영주시민신문 통해 선비 황빈의 업적을 알게 되어 기뻐
요즘 시대에 문중 일에 신경 쓴다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요. 계기가 있었나요?
재선 도의원을 하고 또 57세에 직장도 퇴직한 후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자라나는 후손들이 뿌리를 바르게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전국 여러 곳의 유적지도 방문했습니다.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조사하고 방문하며 알게 된 자료를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중 단체들의 활동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점점 감소함을 보았습니다. 그게 안타까워 어른들에게 건의하곤 했더니 억지로 제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일단 맡으니 제 성격상 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란 말도 있습니다. 은퇴 후 우리 전통을 이으면서 후세대 인성 함양에 도움주는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모르던 저희 황빈 선조님의 발자취에 대해 영주시민신문에서 이렇게 알려주시니 반갑고 감사하고 제가 하는 일에 더욱 보람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뛰어들 때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이었다 하셨는데 선비들이 기본적으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약자 보호였습니다. 선비와 통하는 마음가짐을 가지셨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7세조 중량장공(황승후) 선조가 조선 개국 때 개성에서 영주로 내려온 건 고려를 뒤집어엎고 조선을 세운 권력투쟁의 중앙정치가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9세조 봉래공(황전)께서는 단종을 내몰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병산리로 오셔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셨습니다. 세조의 행위가 인륜에 맞지 않다고 보셨나 봅니다. 시류에 영합해 부화뇌동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신 선조님들을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시조대제 후 기념사진(2024년 6월)
시조대제 후 기념사진(2024년 6월)
풍기 희여골(백리)의 수락당이 근래 문화재로 지정되었더군요.
희여골은 저희 호장공파 용헌 황사우, 송간 황응규, 식암 황섬 선조님들이 계시던 곳이지요. 수락당은 식암 황섬 선조님이 창건하신 학교입니다. 종택은 불타 없어지고 수락당이 쇠락해지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여러 번 관계기관에 발길을 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용헌 황사우 선생과 식암 황섬 선생은 불천위(나라 또는 사회에 큰 업적을 쌓아 영원히 제례로 모시는 신위)인데 불천위를 모시는 종택이 없습니다. 종손 소식이 궁금합니다.
불천위 제례는 문중에서 모여 희여골 숭덕사 사당에서 봉행합니다. 용헌공 종손은 서울에서 법무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젊고 생업 때문에 종손으로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암선생문집이 번역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동양대학교에서 주관해 금년 봄 번역을 마치고 출판했습니다. 동양대학교와는 희여골(백리) 정려각 현판 보존을 위해 소수박물관과 협조하면서 연결되었습니다. 영주시와 동양대학교에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문중일을 보시면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었나요?
경북 평해에 있는 한국황씨 도시조 학사공(황락) 제단원 내에 저희 시조 정조호장(황양충) 제단을 지난 6월 6일에 건립했습니다. 영주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 사당에 시조부터 9세조 까지 18위를 봉안하고 지난해 처음으로 대제를 봉행했습니다. 제1회 시조대제였습니다.
이제 후손들은 영주에 들리면 사당에 참배할 수 있습니다. 선조를 기리는 종친회 활동을 위해서 예산이 필요합니다. 기금조성을 위해 매월 1인 1구좌로 1만 원씩 내는 ‘만공회’를 만들었습니다. 친목 모임에도 매월 몇만 원씩 내는데 후세대에 도움 주는 선조님 사업을 위해 1만 원씩은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장인 저는 매월 10만 원씩 내고 임원들도 더 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과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하셨던 보람 있는 일도 소개해주시지요.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개에 복지회관을 건립하고 시군 15군데에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 과정이 어려웠지만 일하면서도 보람 있었습니다.
도의원을 하셨으니 정치 유혹이 계속 있지 않나요? (함께 웃음)
물론 있지요. 저는 이렇게 초야에 묻혀 선조님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사업을 하며 조용하게 살겠다고 은퇴했습니다. 처음에는 귀향도 생각하고 여러 군데를 답사도 했습니다만 후손들이 많이 사는 서울권에서 선조님들 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용인에 정착했습니다.
고향에 자주 오시고 또 여러분들과 같이 오시면 고향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많은 종친들과 고향의 사당을 찾을 때면 고향을 더 알릴 수도 있는 등 고향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소수서원 방문객들이 황빈 선생의 업적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의원 재임 중 다수의 복지회관 건립과 장학재단 설립
조상 업적을 알리는 종친회 활동 후세 인성 함양에 도움
경기도 도의원 재임 중 멕시코주지사 예방
경기도 도의원 재임 중 멕시코주지사 예방
우리고장 영주는 세상을 밝힌 선비들이 많다. 세상을 밝힘에 크게 기여하고 칭송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며 잊힌 선비도 많다. 최초의 사학 설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민간인의 자격으로 앞장서서 민관 협력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이끈 선비 황빈도 그런 인물이다.
영주시민신문 ‘황재천의 다시 쓰는 선비이야기’에 선비 황빈의 기사가 나간 후 연락된 분 중의 하나가 황윤진 씨다. 황윤진 씨는 자주 고향 영주를 찾는다. 많은 사람과 함께 고향을 찾는다.
창원황씨가 모여 살던 마을과 창원황씨 선조들의 유적을 그 후손들과 함께 찾는다. 때로는 조상이 아니지만 세상을 밝혔던 선비들의 유적을 찾는다. 그는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 회장이다. 황윤진 회장에 대해서는 병산리에 사는 분에게서 이미 들은 바가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선비 황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조상의 흔적을 찾아 고향을 자주 찾는 황회장님을 애향인 인터뷰에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황빈 선생의 업적에 대해 잘 아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황빈 선생의 업적을 ‘황재천의 다시 쓰는 선비 이야기’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후손들이 조상의 업적을 잘 모르고 벼슬의 높낮이로 파악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밝힌 조상의 업적을 알고자 하는 후손들이 있다는 게 저로서는 매우 반갑습니다.
후손들이 선조님들의 업적을 알면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할 거라 봅니다. 자연스럽게 후손들이 사는 현대와 앞으로 살 미래에 필요한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장마후 선조묘소 돌보기
장마후 선조묘소 돌보기
좋은 말씀입니다. 영주가 고향이시지요?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는지요?
단산면 병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단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순흥 소수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부터 서울로 가셨나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서울로 간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습니다.
일찍 직장생활을 하셨군요. 당시 자녀들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들이 많았지요?
네. 힘든 시대였습니다. 부모님은 아들만 낳으셨습니다. 저는 사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다른 형제분들도 고향을 떠나셨나요?
형님들과 형수님들은 고향에 계십니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계시던 형님도 귀향해 계십니다. 저만 고향을 떠나있습니다. 저는 현재 용인에 살고 있습니다. 큰형님은 연세가 90세입니다.
객지에 살면서도 고향에 자주 오신다면서요?
형님들하고 형수님들하고 고향에 계시고 집안 친척들이 고향에 있으니 고향의 대소사에 참석합니다. 제가 또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장인지라 문중 일 때문에도 여러 족친들과 함께 고향을 찾기도 합니다.
고향을 찾는 분들을 보면 옛집이 보존되어 있을 때 더 고향을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옛집이 아직 보존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서울로 상경해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저는 검정고시를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대우그룹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가 중요함을 알고 일찍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성격상 약자를 위하는 마음이 강한 듯합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더 나은 노동운동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며 산업경영대학원 공부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며 여러 보직을 거쳐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의장과 (재)경기노총장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도 했습니다.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시조부터 18위 신위 모심)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시조부터 18위 신위 모심)
퇴직 후 현재의 창원황씨 종중 사업을 하시는지요?
노동운동을 하며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경기도 의회 5대, 6대 도의원으로 봉직했습니다. ㈜고려 노동조합 위원장을 겸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때 국가산업발전 기여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정치와 노동운동 직책을 내려놓은 후 후손들을 위한 사업으로 창원황씨 종중사업을 반강제로 맡게 되었습니다.
황윤진 회장 프로필
- 단산면 병산리 출생
- 단산초등학교, 소수중학교 졸업
- 수원대 산업경영대학원 수료
- 대우그룹 입사
- (현)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 회장
- (현) 한국황씨 중앙종친회 교육문화 부회장
- (역임) 제5대 경기도의원, 제6대 경기도의원
- (역임)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의장 경기노총장학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노총 중앙위원, ㈜고려 노동조합 위원장
- (수상) 철탑산업훈장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4-11-14 19:53:03 황문가소식지에서 이동 됨]
선조의 삶을 닮은 후손, 세상을 밝힌 조상의 발자취를 찾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약자 위한 노동운동이 정치로, 경기도 재선 도의원 역임
영주시민신문 통해 선비 황빈의 업적을 알게 되어 기뻐
요즘 시대에 문중 일에 신경 쓴다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요. 계기가 있었나요?
재선 도의원을 하고 또 57세에 직장도 퇴직한 후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자라나는 후손들이 뿌리를 바르게 알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전국 여러 곳의 유적지도 방문했습니다.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조사하고 방문하며 알게 된 자료를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중 단체들의 활동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점점 감소함을 보았습니다. 그게 안타까워 어른들에게 건의하곤 했더니 억지로 제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일단 맡으니 제 성격상 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란 말도 있습니다. 은퇴 후 우리 전통을 이으면서 후세대 인성 함양에 도움주는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모르던 저희 황빈 선조님의 발자취에 대해 영주시민신문에서 이렇게 알려주시니 반갑고 감사하고 제가 하는 일에 더욱 보람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뛰어들 때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이었다 하셨는데 선비들이 기본적으로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약자 보호였습니다. 선비와 통하는 마음가짐을 가지셨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7세조 중량장공(황승후) 선조가 조선 개국 때 개성에서 영주로 내려온 건 고려를 뒤집어엎고 조선을 세운 권력투쟁의 중앙정치가 싫으셨던 것 같습니다. 9세조 봉래공(황전)께서는 단종을 내몰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병산리로 오셔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셨습니다. 세조의 행위가 인륜에 맞지 않다고 보셨나 봅니다. 시류에 영합해 부화뇌동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신 선조님들을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시조대제 후 기념사진(2024년 6월)
시조대제 후 기념사진(2024년 6월)
풍기 희여골(백리)의 수락당이 근래 문화재로 지정되었더군요.
희여골은 저희 호장공파 용헌 황사우, 송간 황응규, 식암 황섬 선조님들이 계시던 곳이지요. 수락당은 식암 황섬 선조님이 창건하신 학교입니다. 종택은 불타 없어지고 수락당이 쇠락해지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여러 번 관계기관에 발길을 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용헌 황사우 선생과 식암 황섬 선생은 불천위(나라 또는 사회에 큰 업적을 쌓아 영원히 제례로 모시는 신위)인데 불천위를 모시는 종택이 없습니다. 종손 소식이 궁금합니다.
불천위 제례는 문중에서 모여 희여골 숭덕사 사당에서 봉행합니다. 용헌공 종손은 서울에서 법무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젊고 생업 때문에 종손으로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암선생문집이 번역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동양대학교에서 주관해 금년 봄 번역을 마치고 출판했습니다. 동양대학교와는 희여골(백리) 정려각 현판 보존을 위해 소수박물관과 협조하면서 연결되었습니다. 영주시와 동양대학교에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문중일을 보시면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었나요?
경북 평해에 있는 한국황씨 도시조 학사공(황락) 제단원 내에 저희 시조 정조호장(황양충) 제단을 지난 6월 6일에 건립했습니다. 영주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 사당에 시조부터 9세조 까지 18위를 봉안하고 지난해 처음으로 대제를 봉행했습니다. 제1회 시조대제였습니다.
이제 후손들은 영주에 들리면 사당에 참배할 수 있습니다. 선조를 기리는 종친회 활동을 위해서 예산이 필요합니다. 기금조성을 위해 매월 1인 1구좌로 1만 원씩 내는 ‘만공회’를 만들었습니다. 친목 모임에도 매월 몇만 원씩 내는데 후세대에 도움 주는 선조님 사업을 위해 1만 원씩은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장인 저는 매월 10만 원씩 내고 임원들도 더 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과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하셨던 보람 있는 일도 소개해주시지요.
경기도 31개 시군 중 17개에 복지회관을 건립하고 시군 15군데에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 과정이 어려웠지만 일하면서도 보람 있었습니다.
도의원을 하셨으니 정치 유혹이 계속 있지 않나요? (함께 웃음)
물론 있지요. 저는 이렇게 초야에 묻혀 선조님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사업을 하며 조용하게 살겠다고 은퇴했습니다. 처음에는 귀향도 생각하고 여러 군데를 답사도 했습니다만 후손들이 많이 사는 서울권에서 선조님들 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용인에 정착했습니다.
고향에 자주 오시고 또 여러분들과 같이 오시면 고향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많은 종친들과 고향의 사당을 찾을 때면 고향을 더 알릴 수도 있는 등 고향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소수서원 방문객들이 황빈 선생의 업적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의원 재임 중 다수의 복지회관 건립과 장학재단 설립
조상 업적을 알리는 종친회 활동 후세 인성 함양에 도움
경기도 도의원 재임 중 멕시코주지사 예방
경기도 도의원 재임 중 멕시코주지사 예방
우리고장 영주는 세상을 밝힌 선비들이 많다. 세상을 밝힘에 크게 기여하고 칭송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며 잊힌 선비도 많다. 최초의 사학 설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민간인의 자격으로 앞장서서 민관 협력으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이끈 선비 황빈도 그런 인물이다.
영주시민신문 ‘황재천의 다시 쓰는 선비이야기’에 선비 황빈의 기사가 나간 후 연락된 분 중의 하나가 황윤진 씨다. 황윤진 씨는 자주 고향 영주를 찾는다. 많은 사람과 함께 고향을 찾는다.
창원황씨가 모여 살던 마을과 창원황씨 선조들의 유적을 그 후손들과 함께 찾는다. 때로는 조상이 아니지만 세상을 밝혔던 선비들의 유적을 찾는다. 그는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 회장이다. 황윤진 회장에 대해서는 병산리에 사는 분에게서 이미 들은 바가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선비 황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조상의 흔적을 찾아 고향을 자주 찾는 황회장님을 애향인 인터뷰에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황빈 선생의 업적에 대해 잘 아는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황빈 선생의 업적을 ‘황재천의 다시 쓰는 선비 이야기’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후손들이 조상의 업적을 잘 모르고 벼슬의 높낮이로 파악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밝힌 조상의 업적을 알고자 하는 후손들이 있다는 게 저로서는 매우 반갑습니다.
후손들이 선조님들의 업적을 알면 사회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할 거라 봅니다. 자연스럽게 후손들이 사는 현대와 앞으로 살 미래에 필요한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장마후 선조묘소 돌보기
장마후 선조묘소 돌보기
좋은 말씀입니다. 영주가 고향이시지요?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는지요?
단산면 병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단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순흥 소수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부터 서울로 가셨나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서울로 간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할 곳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습니다.
일찍 직장생활을 하셨군요. 당시 자녀들은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들이 많았지요?
네. 힘든 시대였습니다. 부모님은 아들만 낳으셨습니다. 저는 사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다른 형제분들도 고향을 떠나셨나요?
형님들과 형수님들은 고향에 계십니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계시던 형님도 귀향해 계십니다. 저만 고향을 떠나있습니다. 저는 현재 용인에 살고 있습니다. 큰형님은 연세가 90세입니다.
객지에 살면서도 고향에 자주 오신다면서요?
형님들하고 형수님들하고 고향에 계시고 집안 친척들이 고향에 있으니 고향의 대소사에 참석합니다. 제가 또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장인지라 문중 일 때문에도 여러 족친들과 함께 고향을 찾기도 합니다.
고향을 찾는 분들을 보면 옛집이 보존되어 있을 때 더 고향을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옛집이 아직 보존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서울로 상경해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저는 검정고시를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대우그룹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가 중요함을 알고 일찍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성격상 약자를 위하는 마음이 강한 듯합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더 나은 노동운동을 위해 직장생활을 하며 산업경영대학원 공부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며 여러 보직을 거쳐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의장과 (재)경기노총장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도 했습니다.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시조부터 18위 신위 모심)
단산면 병산리 숭보사(시조부터 18위 신위 모심)
퇴직 후 현재의 창원황씨 종중 사업을 하시는지요?
노동운동을 하며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경기도 의회 5대, 6대 도의원으로 봉직했습니다. ㈜고려 노동조합 위원장을 겸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때 국가산업발전 기여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정치와 노동운동 직책을 내려놓은 후 후손들을 위한 사업으로 창원황씨 종중사업을 반강제로 맡게 되었습니다.
황윤진 회장 프로필
- 단산면 병산리 출생
- 단산초등학교, 소수중학교 졸업
- 수원대 산업경영대학원 수료
- 대우그룹 입사
- (현) 창원황씨 호장공파 대종회 회장
- (현) 한국황씨 중앙종친회 교육문화 부회장
- (역임) 제5대 경기도의원, 제6대 경기도의원
- (역임)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의장 경기노총장학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노총 중앙위원, ㈜고려 노동조합 위원장
- (수상) 철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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